갈라파고스 한국 이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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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IT 강국 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인터넷 속도는 세계 최고였고 중국업체가 한국의 게임을 사지 못해 안달이었다. 정부의 모든 민원서비스가 인터넷으로 가능한 몇 안되는 나라였고 클릭 몇번이면 집안으로 모든 물건이 도착했다.

교육분야도 매한가지였다. 강남의 수능 일타 강사 강의를 서울 강남까지 올라오지 않더라도 인터넷강의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공무원 시험, 고시, 각종 자격증도 노량진, 신림, 신촌에 있는 유명학원을 들리지 않더라도 딸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IT를 통해 장미빛 인생을 봤고 모든 나라가 한국을 부러워했다. 우리 자신도 한국의 IT를 자랑스러워했고 개도국을 위한 원조사업에 한국 IT가 자리잡은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과거 2000년 초중반을 돌이켜보면 그땐 정말 꿈만 같던 시절이었다.

현재와 과거 그 시절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

1. 모바일 플랫폼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 효율성을 위한 한국의 독자적인 모바일 플랫폼인 위피(WIPI)를 개발하여 모든 핸드폰에 의무화한다.

2. 모든 공공기관의 문서는 국산 소프트웨어 사용의 장려를 위해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한글로 표준화한다.

3. MS IE에서만 활용 가능한 Active-X 기술 기반의 공인인증서 사용을 인터넷 인증의 표준으로 활용하여 모든 전자상거래에 적용함

4. 아이핀으로 전국민의 인증 방식을 통일함

5. 이러닝 콘텐츠의 패키징 규격으로 스콤(SCORM)을 권장, 대부분의 정부 공공기관의 콘텐츠 규격이 스콤방식으로 정해짐

6. 노동부 고용보험환급, 교육부 교원연수, 학점은행제 등 인터넷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제도가 활성화 됨에 따라 모든 콘텐츠는 품질 인증을 받게 됨. 그로인해 스토리보드를 기반으로 한 플래시(Flash) 방식의 제작 기법이 보편화됨

이 밖에도 참많은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러닝 환경에 영향을 줬던 굵직한 몇가지 들만 정리한 것이다. 개별사안의 무게감과 영향을 일일이 평가할 수는 없다. 개인역량도 되지 않고 하나 하나의 주제가 심도 있는 연구과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식의 정부의 정책에 따라 우리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는 간단하게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1. 모바일 플랫폼으로 위피를 의무화함에 따라 위피를 제외한 모바일 플랫폼이 사라지고 한국 정부의 표준을 따르지 않는 해외기업의 국내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됨

2. 전세계적인 문서 표준 포맷을 따르지 않고 표준조차 부실한 아래안한글을 정부에서 고집하면서 국내의 문서 호환성은 높아졌지만 기타 ISO 표준문서 규격과 오픈소스 문서 포맷이 시장내에서 배제됨

3.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IE(Internet Explorer)의 의존도가 가장 높고 덕분에 윈도우외에 다른 OS는 정부, 공공기관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공공입찰의 모든 사업은 MS 기반의 솔루션외에는 활용이 불가함

4.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에서 제공하는 아이디를 활용한 oAuth 방식의 인증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는 사용하지 못함. 덕분에 Active-X를 잔뜩 설치해야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인증받을 수 있음

5. 모든 콘텐츠는 스콤(SCORM)과 논스콤(Non-SCORM)이라는 이상한 개념으로 나눠지게 되었고 영상하나를 서비스하는데도 패키징을 해야하는 기현상이 벌어짐. 모든 진도율 관리는 스콤 방식을 통해 관리되었고 LMS/LCMS는 일란성 쌍둥이가 되었음. 하필 쉬운 SCORM 1.2 버전을 두고 SCORM 2004 버전을 적용하는 덕분에 시스템의 복잡성은 늘어났지만 진도율 관리 문제는 점점 심해짐.

6. 앞에 이야기한 모든 제도들은 학습자의 형식적인 수강률을 중심으로 관리를 함에 따라 모든 콘텐츠는 규격화됨. 과정 중심이 아닌 콘텐츠를 중심으로 교수설계를 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략으로 플래시 기술이 활용됨. 모바일 전성시대를 맞아 모든 시장 참여자가 갑자기 멘붕에 빠짐

독자진화 한국IT ‘갈파파고스’ 될라

2009년도 기사다. 이미 예견되었던 것처럼 이 기사대로 지난 7년이 흘러갔다. 막을수 있었던 것을 막지 못했다는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닝 분야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닝 업계에서도 누군가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수도 있을법도 한데 우리는 그냥 지난 7년을 맥없이 보냈다.

한국의 국제 이러닝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를 가늠하기 위해 NIPA 이러닝산업실태조사 자료를 살펴봤다. 수출기업이 전체 기업 중에 2.3% 정도가 된다고 한다. 전체 30개 정도의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2013년 1.8%, 2014년 2.1%에 비하면 기업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ODA(해외원조사업)에 참여한 업체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숫자다.

한국의 이러닝 산업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3조 5천억이다. 쉽게 말하면 이 정도 규모의 경제가 내수로만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제대로된 수출기업 하나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것이 우리 이러닝 산업의 그간 성적이다.

이러닝 기업의 수는 전체 1,765개 정도인데 1억원 미만의 기업이 964개로 50% 이상이 넘고 10억 이하까지 범위를 넓히면 76%가 넘는다고 한다. 100억대 이상의 매출을 하는 업체는 전체 48개에 불과하다. 전체 2%밖에 안되는 업체들이 독식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48개 기업중 수출기업은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 자료는 나오지 않아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러닝 국제 경쟁력은 고사하고 국내 이러닝 산업구조 자체도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산업구조자체의 문제를 안고 있다보니 해외 진출은 꿈도 못꾸는 것이다. 그나마 작은 규모의 업체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잦은 창업과 폐업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긍정적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다른 자료가 없어 NIPA의 자료를 참고했지만 업계에서 일을하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이러닝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많은 경쟁력 있는 인력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이러닝 업계를 떠났다. 아예 다른 분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좋은 인력이 남아 있을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직도 이러닝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단히 운이 좋거나 특별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후자보다는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많은 해외 개도국의 인력들이 우리의 이러닝 환경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온다. 그들에게 우리가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

개도국을 위한 그동안의 ODA사업에 콘텐츠, 소프트웨어의 비중보다 하드웨어의 비중이 월등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배울 것이 많지 않지 않으니 장비라도…” 하는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