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구글문서로 협업한 이야기 – 아들의 영어 숙제를 같이 하면서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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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아드님께서 영어학원 숙제를 해야한다고 해서 같이 논의를 했습니다. 숙제가 무려 소논문 쓰기입니다. 그냥 에세이를 쓰는 것도 아니고 소논문을 써야한다고 하네요. 박사 학위 따기 위해 논문을 쓴지 벌써 6년 이상 되었기에, 게다가 교육학 관련 양적논문만 써보았기에 리서치 중심의 논문은 써 본 적이 없었지요. 그래도 논문이 뭐 다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해서 코치를 좀 해줬습니다.

그런데 주제가 괴수같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적 발견의 부작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제로 논문으로 써야한다고? 이런 걸 왜 영어학원에서 숙제 주제로 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더 웃긴건 아드님이 이 주제를 선택해 온 것입니다. 재밌을 것 같아서 선택했답니다. 다른 주제는 좀 말랑말랑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선택에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평소에 이야기해 왔기 때문에 코치하면서 같이 도와주기로 맘 먹고 시작했습니다.

아드님도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다가 점점 견적이 커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더군요. 당연하죠. 아무리 초6이 쓰는 소논문이라고 하더라도 글을 써야하는 데 말이죠. 그것도 영어로. 막상 하려니 당연히 막막했을 겁니다. 옆에서 필요한 부분, 질문하는 부분 답변하면서 같이 논문의 흐름을 잡아갔습니다. 논문 흐름 잡는데 같이 이야기하고, 본론 적용할 부분 같이 논의하고 글 쓰는 것 좀 잡아주고,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군요. 난 한글로 이야기하면 아들은 그것을 재해석해서 다시 영어로 쓰고. 애쓰거군요.

상황 설명이 길었네요. 본격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들에게 문서 작성은 구글문서로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도 구글문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어디서나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소논문 쓰는 숙제도 구글문서를 만들어서 작성했습니다.

<아들이 구글문서로 작성한 소논문 샘플>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설명해 주고 실제 풀어내는 내용을 같이 논의하면서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어제 밤에 마무리를 다 못하고 잠을 자고 저는 월요일에 출근을 했습니다. 마무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원 가기 전에 아들이 한다고 해서요. 결과적으로 구글문서 도구를 사용한 것이 신의 한수였습니다. 출근했는데 문서에 인덱스도 넣어야 하고, 레퍼런스도 달아야한다고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가 시작되기 전이라 구글문서를 공유하는 법을 전화로 알려 주고 링크를 텔레그램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링크를 받은 저는 급한데로 구글문서에 인덱스를 달아주고, 레퍼런스 넣는 방법을 문서에 글로 설명하면서 코치를 해주었습니다. 아들은 구글문서에 편집권한을 주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고, 아빠와 동시에 문서를 편집하는 신기한(?) 경험도 했을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문서가 수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본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의 차이는 분명하게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이 방식으로 문서작성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역량은 하나씩 늘어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아내에게 전화해 보니 대충 분량 맞춰서 갔다고. 남들은 일주일 걸려서 했을 숙제를 반나절만에 후다닥 미친듯이 초치기하고 갔다고 합니다. 집에 가서 어떠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등을 추가로 코치해 줄 예정입니다. 아들이 시간배분을 잘 못한 점, 미리미리 준비하고 진행하지 못한 점 등을 시간이 지난 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합니다.

학원에서는 이런 숙제를 초6이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낸 것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소논문은 영어만 잘 한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논문을 써 본 부모라면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컨설팅을 받거나 누군가가 대신해서 써 줘야할 수 있겠지요. 한글로 누군가가 써주고, 그것을 영어로 바꾸는 식으로 숙제가 진행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약간 찜찜하기도 합니다. 최대한 생각하는 방법, 논문 쓰는 방법을 전수해 주는 방향으로 도와주기는 했는데 제가 너무 많이 개입한 건 아닌지. 앞으로는 이번보다는 더 적은 도움으로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생각의 흐름을 잡아가는 것을 토론 방식과 질문답변 방식으로 이끌어주는 훈련을 더 많이 해야할 것 같습니다. 글 쓰는 것은 직접 해야하는 문제이니까요.

이번 숙제를 코치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빠의 역할을 어디까지 잡아가는 것이 좋을지, 어떤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면 좋을지, 모르면 도움도 못 주겠구나라는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부리런히 노력하는 아빠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