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교육보다 손쉬운 비즈니스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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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를 화려하게 놓았던 CAI(computer assisted instruction)기반의 교육용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있었다.  초록색과 흑백의 브라운관 화면 위에는 16색 표현이 가능한 최첨단 CGA 그래픽카드가 뿜어내는 320×200 해상도의 4색 병치혼합이 뿌려지(지만 결국 그레이스케일)고, 집배원 아저씨의 손에 <어른템풀(?) 가정학습지> 배달되기 시작했다. 5.25인치 플로피디스켓 장과 함께.”

A. 교육용소프트웨어의 시대

요즘 세대들은 듣도보도 못한 로우(low)테크 고대(ancient)개발자의 입장에서 이 당시의 교육용소프트웨어는 지금의 멀티미디어콘텐츠로 구성된 교육용콘텐츠서비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1. 일단, 시각디자인의 효율성이 상당히 높았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화면에 표시되는 밝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표현되는 순수한 흑/백 화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우리의 뇌는 충분한 색상을 느낄 수 있었다. 백과사전의 총천연색 사진보다 훨씬 뛰어난 자연의 이미지를 어린 시절 산과 들판에서 충분히 뇌에 입력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밝은 점의 갯수와 간격으로 표현된 점묘화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뇌는 충분히 컬러 이미지화 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사진 한 장에 4MB를 훌쩍 넘어가는 요즘, 360KB(=0.36MB)디스켓 한 장에 수 십 장의 이런 이미지 자료와 학습 내용을 담기 위한 프로그래머의 눈물겨운 소프트웨어와, 우리의 휴먼웨어인 두뇌가 합성해내는 총천연색의 이미지로 승화되어 상당히 높은 시각적 효율성을 갖게 된 것이다.

2, 정말 공부를 도와주려고 프로그래밍 되었다.

다음> 다음> 키보드를 눌러 진행하는 페이지 프레임 방식이었지만, 하나의 페이지에는 내가 알 때까지 지치지 않고 가르쳐 주기 위한 2-3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했다. 도형과 캐릭터로 수학적 상황을 시뮬레이션하여 설명해 주었고, 내가 입력하는 값에 따라 왜 잘못되었는지를 캐릭터가 설명해 주었다.

평가하고 틀리면 다시 돌아가지만, 틀린 문항과 다른 난이도와 숫자가 등장해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프로그램이었기에 다시 학습할 때마다 새롭거나 더 작은 수와 더 쉬운 내용으로 설명을 또 진행했다. 정말 놀랍게도(?) 컴퓨터는 지치지 않았다. 평가 결과는 틀림없이 디스켓에 기록되었고, 때려치고 놀다가 다시 시작하더라도 내가 고통스러워하던 그 단계의 이전부터 부암없이 재개되었다.

3. Ai를 넘어서는, 교사의 영혼이 담겨있었다.

교수학습 이론과 심지어 교육심리까지 반영되어 있었다. 학창시절 집에서 컴퓨터로 지겨워하며 공부할 당시에는 어린 시절이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교육대학교에 진학하여 수업시간에 제작하거나, 프로젝트 과제를 받아 직접 프로그래밍 하고, 이후 교육용 소프트웨어 공모전 심사 등을 진행하게 되면서, 정말 제대로 알게 되었고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학습자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교수학습 이론과 가르쳐야 할 수업내용을 철저히 분석하여 조합하고, 하드웨어의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해야만 하나의 교육용 프로그램이 완성될 수 있었다. 프로그래밍에는 당시 누구보다 자신있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이 짧았던 나에게 선배 교사들의 예술적인 스토리보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하게 구현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심 투성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역할은 그렇게 구분되는게 옳았다.

난이도와 반응에 따라 변화하는 학습내용, 그물망처럼 연결된 스토리, 평가와 채점을 넘어서 틀린 문항에 따른 반복학습, 쉬운 이해를 돕는 애니메이션 효과 등이 학습자를 위한 절차가 어우러져 영혼을 담아 만든 교육용소프트웨어의 명맥은 여러 이유로 고비를 넘어서지 못했다.

4. 모든 요소가 교육적으로 기획되었다.

요즘의 화려한 멀티미디어 영상 속 강사의 원격강의를 열심히 듣다보면, 중반이 채 되기도 전에 화면 속 저 멀리 흐릿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인테리어 오브젝트에 정신을 팔며, 스마트폰을 꺼내 쇼핑앱을 실행시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프로그램은 미디어보다 훌륭했다. 학습자가 지치지 않도록 설명 도중에 OX 퀴즈를 내어 보너스 점수를 주기도 하고, 단순 암기를 위한 게임미션도 제공하면서 칭찬하고 격려하던 요소들 조차도 학습내용과 연관되어 저절로 외우거나 8비트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교육적인 기획이었다. 방해라고 생각되는 요소조차 교육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는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마치 재걀량의 지략처럼 짜릿하게 느껴진다.

B. 세계적으로 앞섰지만

1980년 CAI시대에 시작된 교육공학 중심의 교육용소프트웨어 산업이 정상적으로, 교육과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며 사이좋게 꾸준히 발전 되었다면, 사람들 말대로 지금쯤은 학교가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

1. 그들이 사라진 시대

이후 2000년들어 초고속인터넷 보급으로 시작된 WBI (Web Based Instruction)시대에 Adobe Flash 붐을 기반으로 멋지게 도약을 하는가 싶었으나, 모체인 강력한 Adobe Shockwave를 웹버전으로 단순화 시킨 까닭에 복잡한 설계와 학습자 상호작용이 필요한 코스웨어 제작에 취약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고대 개발자들은 BASIC으로 바이러스를 만들기도 하였으니 태생적 한계를 핑계라고 본다면, 그들 수준의 Flash Active Script 개발자 부족현상도 이유가 될 수 있었겠다.

코스웨어 디자인 경험이 많은 교사들은, KERIS의 웹 기반 코스웨어 저작도구 개발 지원 포기와 십수년에 걸쳐 누적된 교육용소프트웨어의 관리 능력 부족 등 근시안적이고 교육적이라기보다 비즈니스 친화적인 정책 탓에 흥미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고, 돈밖에 모르던 이해찬 교육부장관 시절 대거 명예퇴직 되는 사태를 겪으며 베테랑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울러, 지금의 세계적인 정보통신 인프라의 밑바닥부터 갈고 닦았고,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레전드급 고대개발자들 또한, IMF를 맞이하여 치킨집으로 대거 이직 사태를 겪게 됨으로써, 교육계 뿐만아니라 IT산업 전반에 걸친 베테랑 세대의 맥을 끊는 엄청난 구멍이 생기게 된다.

2. 컴퓨터로 보는 교육방송

어두운 과거를 겪고 난 이후, 코스웨어라는 개념은 희미해지고, 비주얼 중심의 젊은 Flash 세대를 중심으로 원격학습, 원격연수, 유비쿼터스러닝, 이러닝 같은, 서로 다른 이름에 똑같은 옷을 입은 교육용멀티미디어 시대가 등장한다. 그래도 처음에는 Flash를 기반으로 상호작용도 존재했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코스웨어에 준하는 학습자 개별화 학습도 상당부분 되살아나는듯 싶었다.

그도 잠시, 2010년 이후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IT 공룡기업들을 중심으로 하는 표준화로 웹기반의 멀티미디어스트리밍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 원격직무연수의 등장으로 프레젠테이션 형태의 (정지) 동영상 학습콘텐츠가 팝콘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 5-6년동안의 원격학습콘텐츠는 어찌됐든 동영상으로 통일되는 모습이다.

C. 교육용멀티미디어의 시대

여기까지 대강 살펴본 과거의 CAI시대 혹은 교육용소프트웨어시대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재의 인터네트워크 기반 온라인 교육용멀티미디어 시대와 비교해보자.

A1-C1. 비주얼 중심이다.

학습자의 배경지식과 상상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각자료가 디자인 되고 있다. 이렇게 멋지고 상세하게 설명해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경험이 모두 다른 학습자의 이미지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디자인은 이해를 떠나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학, 심리학 요소가 기획되지 않은 채 떠들기만 하는 화려한 30분 강의자료보다, 잘 기획된 30초 광고가 훨씬 훌륭하다.

A2-C2. 학습은 학습자의 몫이다.

가만히 앉아서 설명 지켜보고, 답하고, 클릭하고, 강사의 강의영상 보면 한 차시가 끝난다. 잘 모르겠으면 다시 되돌려 본다. 결국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더 알고 싶으면 QA버튼을 눌러야 한다. 문제는 질문을 올렸다는 사실을 잊게 되어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습자 중심의 코스를 설계하고 복잡하게 프로그래밍하는 노력은 굳이 필요 없다. 높건 낮건 학업성취도는 학습자의 의지로 8할을 떠넘기면 편하다.

A3-C3. 비즈니스 철학이 담겨있다.

유명한 강사와 제휴하여 책을 출간하고 동영상 강의를 제작하여, 원격학습을 시작한다. 직무관련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합의로 학점을 부여하는 등의 마케팅을 진행한다. 학습자 내면의 의지보다 콘텐츠 제공자의 비즈니스 의지가 더 많이 반영되어 있다.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콘텐츠를 선정하고 세세하게 교육적 가치를 녹여낼 시간에 백화점식으로 많이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A4-C4. 손쉬운 사업일 뿐이다.

하이테크의 프로그래머나, 현장경험 많고 노련한 교사나 코스웨어 전문가가 굳이 함께 참여할 필요는 없다. 원격학습 솔루션과 인프라를 갖추고 콘텐츠를 제작하여 웹사이트에 올리면 서비스가 가능하니까. 콘텐츠를 분석하고 같은 내용을 여러 단계로 분리 제작하여 마이크로화 된 코스를 디자인하고, 교사(강사)의 비교육적인 어휘-말투-동작을 교정하는 기본적인 절차 조차도 유명 강사에게 지나친 간섭일 뿐이니까.

D. 이미 늦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보자면, 사라진 그들을 되찾을 이유도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도 없어보인다. 이미 동영상 강의 중심의 온라인 교육용멀티미디어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굳이 복잡하게 학습자 중심의 코스웨어 디자인을 부활시킬 필요는 없다. 실제로 특정 분야의 원격학습 서비스는 이미 연 매출로 수 천 억원을 찍고 있으니까.

1. 모바일교육용소프트웨어

모바일디바이스의 발전과 대중화를 바탕으로 최근 가정학습형 온라인 교육용소프트웨어서비스가 등장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추측이지만 1980년대 모델을 다시 돌아본 것이 아닐까 싶다.

  • 집배원 아저씨 대신 인터넷이,
  • 흑백 브라운관 모니터 대신 풀컬러 디스플레이가,
  • 키보드 대신 터치스크린이,
  • 단조로운 저작도구프로그램 대신 화려하고 액티브한 앱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습을 진행하는 동안 수도 없이 재도전 하고, 위치와 모양이 바뀐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부가영상과 단조로운 효과들 덕에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랜 시간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따라부르고,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었다.

2. 동영상 강의는 어쩔 수 없나

인터넷 강의와 같은 동영상 학습콘텐츠는 교육용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코스에 따른 반복적인 학습이나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 일방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코스웨어 요소가 디자인될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구전으로 사람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인류의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현대판 멀티미디어 모델의 의미로는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산업화 이후 외계수준으로 문명이 발전되었고, 문명의 수준과 사회적 가치에 따라 교수법을 변화 발전시켜야 한다면, 컴퓨터 앞에 모두 똑같이 앉아 손발을 비비며 들여다 보는 콘텐츠는 솔직히 상당부분 아쉽다.

손이 물론 많이 가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연자의 여행 스토리를 들어본다 할 때, 요약 자막이나 화면 오브젝트에 이벤트 기능을 제공해서 강연 중간 필요한 내용의 보충설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강연자의 강연 도중에 사진자료를 내려받는다거나 추가영상을 감상하는 등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을 시작으로, 여행 중에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게 되는 대목에서 산악전문가의 보충설명과 연결고리를 등록하는 등 학습자의 필요와 요구, 강연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상호작용을 얼마든지 디자인 할 수 있을 것이다.

3. 유러닝, 이러닝, 마이크로러닝

해외의 트랜드를 따라한다 해도 하루아침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스타일대로 꾸준히, 끊임 없이 걸어 왔어야 했다. 교육적인가? 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하면서 기술에 중독되지 말고 꾸준히 왔어야 했다. 원격강의(와 전자결제)를 신나게 도입하던 대학부터, 자격증, 직무연수, 대입수능, 평생교육, 플립러닝 할 것 없이 모두 말이다. 교육을 훈련으로 착각하고, 가르치면 배울 것이고, 돈을 받으면 열심히 할 것이라면서 손쉽게 생각한 것들이 거리차이를만들어 냈다.

학습자의 관점에서 트랜드는 이미 바뀌었다. 마이크로러닝도 기초기본학습의 영역과 정량화가 필요한 기관에서 유의미할 뿐이다. 미취학 아이들부터 이미 유투브를 통해 학습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마이크로러닝보다 더 작은 단위인 나노러닝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학습자의 학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평가하고 동기를 유발시켜 지적 호기심을 기반으로 학업성취를 높이기 위한 하드웨어적인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 소프트웨어적인 설계와 구현, 다수 학습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수업내용과 코스를 효율적으로 수정하고 재배치하기 위한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지금의 덩어리 콘텐츠는 더 작게 마이크로화 해야하고, 마이크로화 된 콘텐츠는 수준과 관심사에 따라 제안할 수 있는 다수의 관련 콘텐츠로 분기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며 평가될 수 있도록 디자인 되고 프로그래밍 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4. 잘 가르치면, 교사를 찾지 않는 법이다

고기 잡아주면서 가르치면, 배고픔을 이겨내려 주위를 맴돌게 되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고기를 찾아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게 마련이다. (맥노턴)

비즈니스를 하려면, 나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는게 좋다. 하지만, 고기 잡을 기력이 다 되면 둘 다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교육-이라는 말이 붙은 일을 한다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멀리 떠나갈 수 있도록 하는게 옳다. 떠나지 못하는 고객들 중에, 성취도가 낮은 고객이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서 그런 고객들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