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개발’에 중독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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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발에 중독 되는 사람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 내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 한다. 부지런함과 노오력을 강조하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잘 될거라는 믿음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조하는 유형도 있다. 뭐가 되었건, 뭐라도 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자기개발'(*자기개발, 자기계발 모두 혼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해요. 이 글에서는 편의상 자기개발로 통일합니다) 중독자가 된다.

수북히 쌓아올려진 자기개발서 제목을 읽다보면, 마치 서로 랩배틀을 하는 것 마냥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어지러울 정도이다. 이미지로 상상해라, 철저히 계획하라, 습관으로 만들어라, 즐겨라 … 그것들은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그 보다 더 많은 경우는 ‘그래 이것만 하면 뭐라도 못하겠냐’ 싶을 정도로 혹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풍진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 중 그때 그때 마음에 가는 것들을 집어 읽고, 읽고, 토론하고 또 읽는 것을 반복한다.

(포브스기사) 밀레니얼 세대는 왜 자기개발에 중독되는가?

독서와 생활 습관 개선은 저어어얼대로 나쁜 습관이 아니다. 권장할 만한 내용이지. 위의 기사는 2018년 1월 기사로, 미국 기준 밀레니얼 세대의 94%가 한달에 300불 정도를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컨퍼런스, 세미나 등에 참석해서 비싼 강의를 찾아듣고 연달아 관련 주제의 교육에 등록하거나 북클럽 등에 투자를 하는 등으로 꽤나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기사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들의 ‘자기개발’ 소비가 매우 크며, 이것이 자기 중독적인 성격이라고 지적한다.

 

자기개발은 그 자체로 중독적

사실 자기개발은 그 자체로 중독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 발전의 여부와 무관하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 내 모습에 중독되는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 한 구절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When you get to that last page, suddenly there’s a sickly feeling inside. While you’re reading a self help book you’re telling yourself you’re being productive. The problem is when you finish, you’ve got to take responsibility, and instead you just go onto the next book and the cycle continues,”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갑자기 역한 기분이 드는 거에요. 자기개발서를 읽는 동안에는 점점 더 생산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스스로 되뇌었겠지만요. 문제는 다 읽고 나면, 또 다음 책을 집어 그 모든 걸 반복할 게 아니라,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거죠”

자기 개발에 매진할 수 밖에 없는 경쟁적 환경

사실 내가 제기하고 싶은 의문은… 자기개발이 중독적임을 알면서 거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어린아이들의 자기 절제력을 테스트한다면서 어린아이 눈 앞에 달콤한 과자를 남겨 두고 엄마가 사라진다. 엄마는 “엄마가 올 때 까지 저 과자에 손을 대면 안 돼” 라고 말하고 아이는 그러겠노라고 귀엽고 동그란 눈을 뜨고 약속을 하지만, 막상 쉽지가 않다. 이 때 끝까지 자기 절제를 해 내는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 의지력을 실험해 보기 위해 설계된 이 실험은 무척 재미있고, 또 방송에서도 많이 보여졌다.

그런데 위의 실험은 최근에 강한 비판을 받았다. 실험 환경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이 눈 앞에 달콤한 과자를 남겨둔 상황. 어느 아이가 달콤한 유혹을 눈 한번 꿈쩍 하지 않고 마다할 수 있을까. 왜 바로 눈 앞에 과자를 두고서, 5분씩이나 참으라고 강요하는 걸까? 더군다나 아이인데? 너무 유혹적인 환경은 객관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환경이 너무 유혹적이면 참기 어렵다.

자기개발이 중독적인 걸 알면서도 내치기 어려운 것은 경쟁적인 환경의 영향이 크다. 에잇. 빠르게 변해 버리는 세상 탓이다. 경쟁적이지 않고 세상이 여유로우면 휴식에 시간을 쓰지 뭐하러 워크샵, 북클럽, 스터디 클럽을 전전하겠는가? 그냥 책이나 읽으면서 내 자신이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정신승리하려는 ‘개인’의 무심함 때문일까? 미국의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상황은 그렇다. 역대 최저의 실업률을 뚫고 사회에서 이제 자리를 잡아가려는 밀레니얼 세대는 배움에 과감히 돈을 쓰지만, 서툴러서 잘 몰라서 일지 언정, 배우는 척 하고 정신승리 하려고 돈을 펑펑 써댈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환경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알콜 중독자 눈 앞에 술을 떡 하니 두고 ‘참아봐’ 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없듯이, 빠르게 변하는 경쟁적 환경 속에서 ‘자기개발은 중독적이니 너무 애쓰지 말아’라는 조언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기’의 역할을 너무 강조하면, ‘사회’의 책임을 놓칠지도

하지만 내가 정말로 던지고 싶었던 의문은, 왜 자기 개발은 ‘자기’의 개발이여야 하는가이다. 대체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우리는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자기개발’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대외적으로도, 대내적으로도 학생이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주말에 독서실 가서 수학의 정석을 펼쳐 문제를 풀던 행위를 그 누구도 ‘자기개발’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공부라고 했겠지.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난 후 같은 행동, 또는 비슷한 행동을 하면 ‘자기개발’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배움’와 ‘자기개발’은 뭐가 다른걸까?
어느 순간 부터 ‘자기’라는 말이 강조될까? 어른이 되었다는 책임감 때문인걸까?

몇살이든지 성장과 개발은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나는 당연한 듯 항상 쓰이는 쓰이는 자기개발이라는 용어가, 성장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완전히 개인에게 지우고 있는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어른이 되면, 자라는 것도 사회가 함께 고민해 주지 않는구나. 나는 의무 교육의 나이를 벗어났으니, 개발은 온전히 나의 몫이고, 자기 개발이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서툰 어른 임을 보여주는 것이구나.

우리는 평생 교육 시대라 말 하면서도, 여전히 개발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더 성장할 수 있는 마디를 갖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취미도 여러 개, 사이드 프로젝트도 여러 개, 원래도 여러 일 하길 좋아했던 나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여러 개 하는 일도 너무 중요하지만, 마디를 만들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법이다. 대나무를 보렴, 위로 계속 올라가기 위해 중간에 마디를 만들어 지지를 하지 않니

여러 가지 일을 계속 할 수 있고, 다양한 주제들을 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매듭짓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이라는 뜻이었다.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지만, 무언가를 매듭짓지 않는 자기개발에 중독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제시해 본다. 평생교육 시대라는 말만 하지 않고, 배운 걸 써먹을 수 있게, 다양한 것들을 배우면 무언가를 매듭지을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기개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무분별한 소모적 자기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최근에 나도 부트캠프, 북클럽, 스터디 모임 등 다양한 유료의 ‘지식 서비스’를 보게 된다. 그런 프로그램은 실제로 내 또래인 밀레니얼 세대들을 타겟팅하고 있다. 학원비 만큼 비싼 돈을 내고 참석한 스터디 모임이나 북클럽도 있었다. 무언가 노력하는 느낌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그게 내 인생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또 모르겠다. 공부가 자기중독적 성격이 있는 만큼, 그리고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나는 성인들에게 학습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훈훈한 기쁨과 보람을 줄 수 있는 영역이 시장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교육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이다. 다만 수요와 단가, 이윤만 고민하지 말고 매듭을 지어주려는 노력도 병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