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과 대수학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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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이라는 나라에 왔다. 소련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CIS 국가중 하나다. 이번에 회사에서 수주한 코이카 사업이 시작되면서 킥오프 미팅을 위해 처음 방문한 것인데 우즈벡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나라다. 20년전 대우에 몸담고 있을 무렵 루마니아, 인도, 중국을 거쳐 바로 다음 프로젝트가 우즈벡의 대우 자동차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IMF 금융위기로 인해 대우가 폭망하지만 않았어도 20년전에 이땅을 밟았을수도 있었다.

이번 코이카 사업이 수주가 되어 다시 이 나라와 연을 맺게 된 것이 그냥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나에게 우즈벡은 까막득한 나라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적어도 3년간은 이 나라와 새로운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우즈벡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우가 이 땅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대략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이번 코이카 사업의 수원기관은 TUIT라는 대학인데 우즈벡의 카이스트 같은 곳이다. 현장에 와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중 몇장을 회사 채팅창에 올렸는데 그걸 본 같이 일하는 터키 친구가 사진중 하나를 보며 “알콰리즈미”를 언급했다. 학교 안내를 받을 처음 받을때 언뜻 스쳐가며 들었던 것 같은데 그냥 지나채 버린 이름이었다. 링크된 위키피디아를 보는 순간 눈에 띄는 두 단어가 있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콰리즈미

컴퓨터에 프로그래밍에서 늘 언급되는 “알고리즘”과 대수학을 일컫는 “알제브라”.  이 두 단어는 세간에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는 말이라 그 의미와 기원을 찾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다. 알고보니 알고리즘은 알콰리즈미의 이름이 라틴어로 바뀌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이고 알제브라는 그가 쓴 책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었다.

1983년 9월 6일 소련에서 알콰리즈미 출생 1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우표

여기 오기전 이 두 단어 모두가 우즈벡과 관련있다는 것과 두 단어 모두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나라에 대한 관심이 특정한 인물에 의해 시작될 것이라고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알콰리즈미라는 인물로 인해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당시는 아랍이 단일 국가로 되어 있던 시기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지 않았고 그가 책을 쓰며 주로 머물렀던 곳은 지금의 바그다드다.)

그가 원주율(파이)를 좀 더 정교하게 계산하였다거나 다른 학자들과 지구의 둘레를 재고 지도 제작을 하였다는 것외에도 이 사람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면서 주목한 부분은 따로 있다. 그가 “지혜의 집”이라는  9세기 경 아바스 왕조 기간동안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설립 된 번역 전문 기관을 세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이슬람 과학은 세계 만물에 보편적인 질서가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받아들였다는데 이곳에서 이슬람의 수학, 과학자들이 그리스어로 된 철학, 과학 서적들을 번역하고 새 책들을 출판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과거 고대 그리스와 인도 및 중국에 존재하던 수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산술과 대수학, 그 외에도 천문과 역법 등에 대한 책을 집필하였다고 하는데 그중 그가 쓴 대표적인 저서가  ‘al-Kitab al-mukhtasar fi hisab al-jabr wa’l-muqabala’ 인데 여기서 al-jabr는 오늘날의 이항의 개념을, al-muquabala는 동류항 정리를 뜻한다.

그가 그리스와 주변 국가에서 흘러들어온 여러 학문을 번역하기 위한 기관의 기관장을 맡았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그는 아랍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등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사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체계화했던 내용들이 온전한 그의 창작물이라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켜켜히 쌓여왔던 지식들이 그를 통해 정리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가 뛰어난 학자였고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시대가 요구하고 토대위에 그의 재능이 빛을 발했다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에듀테크 분야의 수출과 관련되어 에듀테크협회의 해외진출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그동안 우리의 에듀테크의 수출 성과가 크지 않은 이유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모이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이 협의체 내부에서 조차 해외진출을 수출이라는 형식으로만 국한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우리에게 해외는 그저 우리가 가진 것을 판매하는 곳으로만 의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버클 활동을 통해 하고자 했던 활동중 하나는 에듀테크와 관련된 다양한 해외 아티클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각자 개인의 글을 쓰고 있지만 우리가 해외의 글을 번역하고 이를 해석하는 일은 아직 엄두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개인들의 잉여력만으로 부족했다는 것이다. 알콰리즈미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그가 설립했던 “지혜의 집”이 인상깊었던 이유이다. 우리 에듀테크에서 등한시되고 있는 많은 것들중 하나는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이해하는 노력이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가진 자부심이 지나친 자만심으로 변질된 탓도 있겠지만 하나의 언어로 되어 있는 반도국가의 한계를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이런 상황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뿐만 아니라 해외 에듀테크 그룹들과의 교류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