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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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글을 자주 쓰기 시작하면서 글쓰는 것의 의미에 대해 가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컴퓨터앞에 앉기전까지 무슨 글을 쓸 것인가를 미리 고민했던 적은 드물었다. 책상앞에 앉은 후 이리 저리 떠오르는 생각중 하나가 대개 글의 재료가 된다.

지금 쓰고 있는 이글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안에 뭔가를 발견하려는 느낌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글을 어떻게 쓰라고 조언하는 글이 아니라 내 글쓰기의 “어떻게”를 발견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글을 쓰는 행위란 찰라적으로 지나쳐버린 생각들의 꼬투리를 잡아 하나씩 조립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할때 종종 떠오르는 상념들은 늘 좋은 글감이 된다. 그 글감들은 평소엔 안개처럼 특정 형체도 없이 머리속을 떠돌다 컴퓨터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단어들의 조합으로 형체를 드러낸다.

그래서 억지로 뭔가를 쓰려고 노력하기 보다 그냥 의식이 알아서 글을 쓸수 있게 기다린다. Let it write. 의식적 글쓰기가 아닌 내면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글을 쓰기가 힘든 이유는 생각의 속도와 글을 쓰는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글을 쓰는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글을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보다 느리다는 것은 생각을 그대로 이어받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단면과 단면을 이어 붙이는 작업에 가깝다.

글쓰기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입체적 생각을 시간으로 미분한 후 그 단면을 재조립하여 다시 적분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키워드들을 잡아내는 과정과 함께 그 키워드들을 조합하는 방식이 주로 글의 내용을 좌우한다.

누군가는 글을 쓰기위해 키워드나 느낌을 노트에 정리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게으름 탓이기도 하고 그렇게 한들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기억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키워드와 느낌이 내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은 내게 소통의 과정이기도 하다. 외부와의 소통은 글이 공유되었을때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소통은 그 키워드와 느낌을 가진 자아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자아는 다면적이다. 여러 개로 나눠진 다양한 인격체가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론 고매하다가도 유치해지기도 하고 현명해보이다가도 지극히 감정적인 인격체로 돌변하기도 한다. 글쓰기란 종잡을 수 없는 이 인격체 중 하나를 찾는 과정이다.

대화의 상대가 비로소 나타나기까지 내 글은 맥락없이 떠돌다 원하는 상대가 나타난 이후에는 내 의도보다 빠르게 글이 진전되는 신기한 과정을 겪는다.

그럼에도 글쓰기란 여전히 편하지 않다. 글 곳곳에 숨어있는 비문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부끄러움은 차치하고서도 내 생각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글이 여전히 정직해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이 불편함은 때론 가식과 현학을 낳기도 한다. 애써 눙치거나 에두르는 이유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해졌지만 정작 자신의 내부와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다. 늘 새로운 소식과 다양한 미디어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여전히 자신과의 대화에는 인색하다. 글쓰기란 과정을 통해서라도 잃어버린 자아와의 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에듀테크 분야에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하기 힘든 이유는 분야의 협소함이나 글쓰기가 주는 혜택이 글쓰기의 수고로움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글감이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새해는 많은 사람들이 꼭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에 다같이 동참해주길 바란다. 이 분야에 떠드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좀 더 나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나또한 글쓰기 외에 또 다른 형식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뭔가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걸 시도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다들 건강하고 안녕한 한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