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System Integration)를 위한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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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직무는 비개발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코딩이라는 기본 기능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보면 꽤 다양한 분화가 이뤄져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기능적으로 환경적으로 꽤 다양한 관점의 분류가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랭귀지적 분류도 있고 앱, 모바일 등 플랫폼에 따른 분류 그리고 오래전 이야기지만 3-Tier와 같은 프로그램의 위상에 따른 분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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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귀지로만 따지더라도 꽤 많은 분류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데 잘 이야기되지 않는 방식의 또 다른 분류가 있는데 바로 ‘계급적인 분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개발자 그룹이 있기도 하지만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은 개발자 그룹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그룹을 특정해서 지칭할 수는 없지만 자기 만족도가 높은 개발자 집단은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소위 잘나가는 포털 혹은 게임 회사, 작더라도 나름 자리를 잡고 있는 솔루션 회사들에서 일하는 개발자 들이다.

반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그다지 많지 않은 그룹도 어딘가 존재하는데 주로 SI(System Integration) 개발 역할을 하는 개발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원래 SI라함은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게 기존 솔루션들을 통합하는 것을 말하는데 프로젝트를 하는데 있어 이들의 역할은 실제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의 위상이 그다지 높게 평가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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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I 엔지니어지 마술사나 슈퍼맨이 아니다.” ㅎㅎ

위 사진은 호주의 쇼핑몰에서 팔고 있는 SI 엔지니어들을 위한 T-Shirt인데 그들의 자존감도 그다지 높지 않은 듯 하다. 거의 25년을 소프트웨어 업계에 있으면서 SI 개발자에 대해 느끼는 이 생소함은 이런 말로 요약된다. “흔히 존재하지만 누구도 되고 싶어하지 않는 개발자”

군대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는 군인집단이 있다. 주로 전방에 있는 육군 보병직을 맡고 있는 군인들이다. 그들의 미션은 최전방에서 총탄이 쏟아지고 포탄이 터지는 가운데 고지를 점령하거나 반대로 사수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누구도 이런 보병생활을 오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진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가는 과정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SI 담당자는 고객이라는 적을 눈앞에 두고 총칼들고 싸우는 보병과 같은 존재다. 고객의 불합리한 요청이라는 폭탄속에서 수시로 변화되는 고객의 요구사항이라는 총알을 맞대응하면서 그들과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존재다. 그렇다보니 보병과 마찬가지로 개발자 그룹에서는 이런 일은 늘 기피의 대상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이 역할을 맡게 될 땐 자신의 성장의 과정에서 어쩔 수없이 거쳐야 하는 도제 과정쯤으로 여기거나 혹은 잠시동안 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일로써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일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육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하지만 SI 개발방식도 예전과 다르게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듯하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기준으로 처음부터 벽돌쌓듯 개발하는 방식에서 솔루션 혹은 프레임워크를 중심에 두고 개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현대전에서 보병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과 같다. 직접 싸우는 역할에서 미사일 혹은 드론이 초토화시킨 고지를 점령하고 잔병을 소탕하는 역할로 바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사일은 솔루션이고 드론은 프레임워크다. 잘 만들어진 솔루션과 프레임워크라는 무기가 있을때 현장에서의 개발 효율성은 배가된다. 더 중요한 것은 솔루션과 프레임워크가 있어야 고객을 더 잘 설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고객이라는 적을 압도하는 건 보병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지원받고 있는 거대한 무기체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기체계는 누가 만드느냐는 것이 관건인데 개발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고객보다 그 업무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통찰하고 있는 개발자 혹은 기획자’ 바로 SI의 현장 경험을 해본 그들이다. 경험적으로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그들로부터 나온다. 뛰어난 개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때론 좋은 솔루션을 기획하고 만들기도 하지만 고객들과 부딪히는 장소인 현장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뛰어 넘기는 힘들다.

에듀테크로 잠시 시선을 넘겨보더라도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최근 각광받는 몇몇 에듀테크 서비스를 개발한 주체들은 대개 선생님 혹은 강사의 경험을 한 분들이다. 학교 혹은 학원이라는 현장의 요구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주체가 될때 좋은 교육 솔루션과 서비스가 나온다는 뜻이다. 현장의 어려움과 요구를 이해하는 것이 좋은 솔루션이나 서비스의 기본이 되고 있다는 거다.

교육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가장 많이 안타까운 것중에 하나가 경험있는 개발자나 기획자들이 업계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가졌던 현장에서 경험과 노하우도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대부분 직접 간접적으로 SI와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교육업계 SI의 척박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 또한 한때 그들의 위치에 있었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누구보다 그들의 절망과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인해 그들이 겪었던 고객과의 치열한 싸움이 새롭고 창의적인 개발물로 치환되지 못했다는 마냥 아쉽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고 SI 기능을 가지고 있는 개별 회사도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난망하다. 하지만 SI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들 스스로가 자괴감을 갖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분위기가 바뀔리도 없고. 그렇지만 SI를 기피하는 현상과 SI의 역할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분위기는 사라져야하지 않을까?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얻게 된 경험은 이러닝 혹은 에듀테크 업계가 지켜야할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