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Moodl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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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국으로 온 마틴 두기아마스를 맞았다.  예전에도 몇번 MoodleMoot 행사에서 만난던 적이 있었던 터라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첫 만남은 각별했다. 공항에서 내리던 순간부터 둘째날 머물고 있던 북촌마을로 데려다 줄때까지 이틀 동안 동선을 함께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69년생, 광산개발 회사에 다니던 부모님 덕분에 Outback(오스트레일리아의 건조한 내륙부에 사막을 중심으로 뻗어있는 넓고 인구가 희박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단파라디오를 통해 일치감치 Distance Learning을 통해 성장했던 아이.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했고 컴퓨터학과에 진학해 개발자의 꿈을 꾸어왔던 그는 공부하던 대학에서 WebCT(블랙보드의 전신)를 운영하다 본인이 스스로 LMS를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나서 만든 것이 바로 무들이다.  지금은 무들의 창시자로 그리고 무들 개발을 이끄는 Pty의 대표로 오픈소스계에서도 우뚝선 존재다. 

처음 무들에 대해 알기 시작했을 무렵 무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가 쓴 구성주의에 대한 논문을 읽고 그가 단순한 개발자가 아님을 직감했고 이후 직간접적으로 그가 쓴 글과 강연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무들 생태계를 대표하고 있었던 터라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존재였다. 하지만 시드니에서의 첫 만남을 통해 꽤나 유쾌한 그리고 사교적인 사람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어진 몇번의 만남을 통해 그가 가진 개발자로서의 비전 그리고 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오픈소스는 다양한 주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유지된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없는 생태계라는 것이 쉽게 작동될리가 없다. 그가 MoodleHQ를 통해 지금까지 매년 두번 정도의 업그레이드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리더쉽과 오픈소스를 유지하고 있는 몇가지 비즈니스 덕분이다. 하지만 무들 사업의 주체로 2008년부터 사업을 해오면서도 커뮤니티에 이렇다할 기여를 한적이 없었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계기가 충분치 않았고 커뮤니티와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어색했던 탓이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Moodle Partnership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무들 커뮤니티와 그에 대한 미안함때문이었다. 공식 무들파트너가 된다는 뜻은 수익의 일부를 커뮤니티에 기부하겠다는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2015년 마침내 계약이 성사되고 조금씩이었지만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비로소 미안함을 조금 덜 수가 있게 되었다.

이후 마틴과의 우연한 조우는 일본에서 있었던 Moodlemoot에서 또 한번 이뤄졌다. 좀 더 당당한 자세로 그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무들 잔치의 오너로 여전히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했던 그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한국의 무들 현황을 발표하던 현장에서 조차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서운했다기 보다는 남의 잔치에 괜히 끼었들었다는 멋적음이 더 컸다. 오며가며 한국 Moodlemoot의 가능성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을 찾아갈거라는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헤어졌다.

그러던 그가 일본 Moodlemoot 참여차 일본을 가기위해 잠시 한국에 들리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웃집을 방문하기 위해 별 목적없이 스치듯 찾아온 손님이라도 그가 반가웠다. 기다려왔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으로 그와의 조우를 기다렸다. 별 목적없이 진행되는 방문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회사에서만 맞을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소소하지만 작은 행사라도 마련하고 싶었고 서울대에서 화답을 해준 덕분에 그가 참석한 한국에서의 첫번째 무들 행사가 무사히 치뤄질 수 있었다.

2박3일동안 그가 머물면서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 그의 방문을 통해 한국 Moodlemoot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과 한국에서의 Moodle의 역할이 앞으로 더 커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한 것도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비로소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이 더 큰 의의라고 생각된다. 그와 지내던 이틀동안은 그가 우러러 볼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한 옆집 “두기”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지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는 69년생 동갑내기로써의 동질감을 발견한 것도 그랬지만 의외로 약간은 허술하기도 했던 그가 훨씬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도 무들과 맞닿아 있던 내 존재감을 애써 부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무들 사업은 내 아이덴티티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광고를 하는 것도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준 무들 스티커를 내 노트북에 붙이면서 내 정체성을 드러낼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수트를 입지 않아도 자신이 스파이더맨임을 자각하던 순간 비로소 그가 진정한 스파이더맨이 된 것처럼 무들이 다시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I am a Moodle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