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진화하고 있을까?

0
1237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제법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이러닝의 태동 이후 지난 20년동안 이러닝이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당연하게도 질문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과 비관적인 입장이 공존한다. 낙관적인 입장은 이러닝이 기존 오프라인 교육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공간적, 시간적 제한을 다양한 기술과 결합하여 극복하는데 이바지했고 개별화 학습, 협력 학습 등의 가능성을 높여 학습의 수월성을 신장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의견일 것이고 비관적인 입장은 이러닝은 여전히 면대면 강의 방식의 효율성을 따라잡는데 실패했고 그래서 오프라인 교육의 대안이라기 보다는 보조도구로써만 유효하다는 의견에 가까울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의 비관적 입장은 구성주의, OER, 완전학습, Adaptive Learning, MOOC, 플립러닝 등 해외에서는 제법 굵직한 성과를 거둔 테마조차 한국에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복된 실망과 낙담의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시 이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1683b41de42a95a12c583eb248dfd072_1523576012_469.png

 

이 이야기는 이러닝의 연대기를 서사로 풀어야할 내용이므로 수많은 사례 중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른 이야기가 구성주의다.

구성주의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러닝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단어다. 피아제나 비고츠키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용을 다 몰라도 “지식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사람마다 상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므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동적인 활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는 결과물”이라는 정도로는 이해되고 있다.(사실 구성주의는 그다지 가벼운 이론이 아니다. 교육학에서는 물론 심리학, 인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초창기 고용보험환급 제도가 시행될 때 구성주의는 모든 이러닝 콘텐츠 제작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때문에 단순한 동영상 콘텐츠는 예외없이 낮은 등급의 평가를 받거나 심지어는 등급을 받지 못한 상황도 발생된다. 그래서 업계가 대안적으로 선택한 기술이 플래시다. 다양한 저작도구가 대안적으로 고려되었지만 결과물에 대한 품질과 생산성면에서 플래시를 따라잡을 수 있는 대안은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업계에서 수많은 플래시 개발자와 교수설계자를 양성하게 된 계기는 이렇게 만들어 진다. 초창기 플래시 게임을 개발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교육공학 출신의 교수설계자들은 업계에서 그다지 흔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게 되고 제법 큰 시장도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SCORM같은 표준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콘텐츠 개발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어느듯 콘텐츠는 상당한 비용과 전문가들이 모여야 만들어질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되어갔다. 품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칸아카데미와 같이 저작도구를 가지고 SME(내용전문가)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있던 해외의 추세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이후 한국 이러닝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모바일, Html5 등 기술환경 변화 그리고 제도 변화 등 환경이 바뀜에 따라 이전 콘텐츠 개발 방식은 더 이상 시장에서 유효하지 않게 된다. 되돌아보니 우리는 세계적인 조류와는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였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콘텐츠 개발 분야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예산과 인력들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은 콘텐츠 개발 현황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고 있고 콘텐츠의 형식 문제로 번역을 통한 해외 판매, 콘텐츠 재가공, 큐레이션, 유지보수 등 다양한 문제로 대량의 좀비 콘텐츠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게 지난 20년 사이에 우리 이러닝 업계 특히 콘텐츠 개발 분야에서 일어났던 그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개략적 설명인데 정부는 정부대로, 학계는 학계대로 그리고 업계는 업계대로 그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치고 너무 힘빠지는 결과다.

“그럼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 있다. 피아제나 비고츠키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관계, 학계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특히 업계는 정말 죽으라고 최선을 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각자의 최선의 합이 최선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론적인 부분도 옳았고 각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다.

경험적으로 봤을때 우리의 선의는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선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중요한 이유다. 이 땅에서의 구성주의 적용의 실패는 선의의 부족이 아니라 선의에 대한 오독과 잘못된 해석 탓이다. 모든 트렌드와 이론에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플래시에서 Html5로 바뀐 것이 과연 진화일까?”

Html5는 전혀 나쁘지 않다. 다양한 기술들이 태동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줬고 인터랙티브 비디오, WebRTC같은 결과물이 교육환경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많은 저작도구들이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기능을 제공하는 데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Html5의 선의만 보고 있다. 플래시적 교수설계법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고 관련된 제도와 교육 기관들의 입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는 MOOC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전 콘텐츠 개발방법론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Html5는 단지 기술일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리가 없음에도 오히려 지금까지의 실수를 덮어주는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이 이야기는 좀 더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라 추후 다른 글로 정리해볼까 한다)

지나고보니 씨디롬시대부터 Html5가 나온 지금까지 우리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기술만 달라졌고 환경만 차이가 날 뿐이다. 이것을 진화라고 부를수 있을까? 생물적 진화는 다양성을 기초로한 생태계 유지가 핵심이다. 지금까지의 진화가 에듀테크 생태계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각자가 해보면 결론이 나온다.

사설이 길었다. 긍정적인 부분은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대신 최선보다는 다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점검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