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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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무리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제법 긴 시간을 바깥에서 지내고 돌아왔다. 낯설음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은 또 다른 낯설음이다.

명리에서 이야기하는 사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기 보다는 확률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향을 일컫는 말이다. 사주로 인해 뭔가가 결정된다기보다는 특정 기회가 다른 사람보다 잦다는 말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뿐이다.

내 사주를 보면 월주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역마가 눈에 띈다. 역마는 여행, 출장 등 주로 공간적 의미로 이야기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를 갖는 기질에 가깝다. 경험적으로 보면 역마는 낯설음으로 요약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낯설음은 늘 자연스럽다. 잦은 해외 출장도 그러하지만 한국사람같지 않은 내 외모는 그 자체로 역마다. 공간적인 의미에서도 역마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지만 새로움에 대한 관심이 아직 크다는 것은 역마가 공간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딘가 머물러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은 삶. 이런 낯설음을 동경하는 기질은 지나고 보면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된 키워드이기도 했다. 영어에 대한 특별했던 관심은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고 우연하게 IT쪽으로 오게된 것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우연일지는 몰라도 에듀테크 분야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잘 어울리는 편이다. 교육은 그 자체로 새로움을 습득하는 과정이고 ICT는 변화의 축이다. 당연하게도 영어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주요 수단이었다.

http://v.media.daum.net/v/20130215113110402

얼마 전에 읽었던 이 흥미로운 기사를 요약하면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훨씬 위험에 대해 민감하다는 것이다. 즉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훨씬 겁이 많다는 것이다.

학습이라고 하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낯설음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람마다 이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흘러간 옛 노래를 아직도 신곡처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말은 않지만 그들은 다가오는 세상이 두려운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했던 그의 제자 히파소스를 죽인 이유도 새로운 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http://quickstudy.tistory.com/37

그런 의미에서 버클은 진보주의자들의 모임에 가깝다.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왜 진보쪽에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내 대답은 단순했는데 “진보쪽에는 감동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누군가 내게 왜 버클에서 작당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버클에는 재미가 있다” 라고

그리고 그게 이런 허접한 글을 버클에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