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계의 이단아 AS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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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 감각 쾌감 반응) 학계에서나 쓰일만한 다소 이질감있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말은 어원도 확인할 수 없는 그냥 신조어다.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이유도 없이 흥분 혹은 안정되게 하는 뭔가를 통칭해서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새소리, 물소리와 같은 백색소음(White Noise) 뿐만 아니라 속삭임같은 인위적인 소리를 내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단순 소리뿐만 아니라 Primitive Technology 유튜브 영상처럼 아무 생각없이 보게되는 영상들도 큰 범주에서 ASMR 콘텐츠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ASMR류의 콘텐츠는 최근 인터넷에서의 콘텐츠 소비 성향이 다변화되는 것과 더불어 지식과 정보 중심의 콘텐츠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 혹은 분화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꽤 흥미로운 시사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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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Primitive Technology 영상은 행동만 보여줄 뿐 아무런 대사도 없다. 물론 약간의 편집이 있고 소소한 장면 전환은 있지만 연출이라고 할만한 뭔가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들리는 소리조차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작업에 따른 소리 외에는 전혀 없다. 음악, 음향, 정교한 편집 그리고 유튜브에 흔하디 흔한 자막도 한 줄없는 이 콘텐츠는 조회수가 무려 1천3백만, 구독자수가 800만이 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콘텐츠는 말 그대로 내용(Contents) 중심적이다. 특정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소비된다는 것인데 그에 비하면 ASMR류의 콘텐츠는 지식과 정보 전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유튜브에는 수없이 많은 이런 종류의 ASMR 콘텐츠가 존재하고 있는데 장르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콘텐츠가 나열되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로 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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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생산되고 있는 정보의 총량은 인류가 근세기까지 쌓아왔던 지식의 누적 총량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덕분에 현대인은 이전 세대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정보의 홍수라는 희한한 상황을 맞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정보에 대한 수월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여 인류 전체의 평균적 정보 판단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줬지만 정보 과잉으로 인해 우리의 인지기능의 둔감 혹은 마비라는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넘쳐나는 텍스트형의 정보와 오디오, 비디오와 같은 멀티미디어 정보들은 우리의 사고력과 집중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이지만 이를 큰 사회적 문제로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아래 글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책의 일부에서 나온 글이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책과 같은 문서를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을 보여줌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이들은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과 관련한 전전두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반면 숙련된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는 웹 페이지를 보고 검색할 때 이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집중적인 활성화를 나타냈다. (중략) 인터넷 사용자들의 집중적인 뇌 활동 양상은 깊은 독서 등,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행동들이 온라인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찰나의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며 링크들을 평가하고, 또 관련 내용을 검색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방해가 되는 문서나 다른 정보로부터 뇌를 분리시키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정신적 조정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뇌는 보고 듣고 읽는 등의 행동을 통해 단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브라우저를 통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정보들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외에도 정보의 유의미성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뇌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열된 정보를 일일이 해석하고 판단한다는 의미는 우리의 뇌가 훨씬 높은 강도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많은 정보와 지식에 노출된 탓에 우리의 뇌가 심하게 혹사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뇌의 피곤함은 수면과 같은 물리적인 방식으로도 해결될 수 있지만 깨어 있는 동안의 뇌의 휴식은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현대인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의 뇌가 선택한 방식이 ASMR이다. 무의식적으로 외부로부터 제공되는 정보를 차단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내용 없는 콘텐츠로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이다.

ASMR의 인기를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정보의 제공량과 학습효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습자의 뇌는 컴퓨터와 달라 모든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복사되지 않는다. 굳이 구성주의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각자가 다른 경험을 해왔던 탓에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시각에서 맹점이라는 것이 존재함에도 우리가 그 맹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뇌가 비어있는 시각 정보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다 지난 수업시간에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는 이유도 뇌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인지 능력에 있는 빈틈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에 있어 뇌의 무의식적 활동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봐야 하는 이유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걸맞는 학습 콘텐츠는 단순히 많은 정보와 지식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ASMR적 요소가 포함된  것이어야 할 수도 있다. 아래 링크는 관련되어 진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연구 사례이므로 참고를 하면 좋을 듯하다.

https://asmruniversity.com/2016/11/30/apprich-research-asmr-studying-learning-education/#more-6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