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의 미래는 어디서 시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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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늘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에듀테크분야에 종사한지 꽤 오래된 사람들에게서 조차 교육과 에듀테크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은 그리 편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가늠해보는 것은 이 분야에 일하는 사람에겐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숙명에 가깝다. 맞든 아니든 미래에 대한 예측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참여하고 있는 컨설팅 프로젝트에서도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수월하진 않지만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트랜디 키워드와 벤치마킹을 적절하게 섞어 그럴듯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개 이런 방식으로 나온 결과물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유는 “바넘효과”때문이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석할 때나 길거리 철학관에서 듣는 이야기가 그럴듯해보이는 이유와 같다는 것이다.

이런 예측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예측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지나간 미래에 대한 복원에 가깝기때문에 제대로된 예측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이런 방식의 예측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진다고 해도 완전하게 차별화된 서비스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적어도 남들만큼”이라는 목표를 가졌을 때와 “차별화가 생존전략”이 되는 경우에 따라 이 전략의 유효성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된 새로운 에듀테크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미래 예측은 어떻게 가능할까? 한가지 팁을 주자면 에듀테크 바깥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좀 더 거시적인 IT 환경 혹은 교육에서 벗어난 철학, 뉴로사이언스 등의 키워드를 탐색해보는 것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있어 훨씬 나은 결과물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셜러닝의 미래는 StackOverFlow에 있을 수 있고, 콘텐츠 공유시스템은 GitHub에서, 미래형 JustInTime 교육 서비스를 꿈꾼다면 Twitch를, 저작도구의 앞날을 예측한다면 Shotgun 서비스를 살펴보는 것이 웬만한 에듀테크 서비스들을 조사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고 열심히 만든 교육 서비스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때 그 원인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로고스”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파토스”와 “에토스”의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진단하는 것이 나은 서비스로 진화시키는데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엘런케이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OOP: Object Oriented Programing)과 유저 인터페이스 설계라는 개념을 정립했던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다. 또한 퍼스널 컴퓨터(PC)의 아버지 불리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 분이 남겼던 말중에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일이다” 라는 말이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미래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70년대 태블릿의 미래를 예측했던 엘런케이와 같이 바깥 세상에서 재즈를 연주하다보면 어쩌면 2020년의 에듀테크의 미래가 보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