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공간 버클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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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버클멤버들이 열심히 쓴 글들이 있어 빈자리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사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버클에 올릴 만한 글들이 없었을 뿐이다.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이야기도 있었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해 소견을 정리한 글도 있었지만 끝내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일기같은 글을 굳이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글도 크게 일기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이 될 듯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굳이 버클에 올리는 이유는 버클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의미를 추적하기 위함이다.

버클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글이 버클에 어울릴까? 이 뻔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물론 없다. 개인 생각을 적든 소설을 쓰든 간에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버클은 일단 오픈된 공간이고 그저 할 이야기가 있다면 버클 멤버는 어떤 글이든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떤 글이 버클에 어울릴까에 대한 판단은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개인적인 기준이 있다하더라도 그 기준을 다른 멤버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버클에 어떤 글들이 올라오는 것이 좋을까라는 것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앞으로 올라오게 될 새로운 글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최근 올라오고 있는 우리 멤버들의 글들은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매우 반갑다. 글의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고 각자의 다양한 관심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버클은 에듀테크 분야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일종의 하위 문화 같은 것이다. 어느 분야든 이런 문화들은 존재한다. 팝분야에 팝컬럼니스트와 영화분야에 평론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에듀테크는 규모의 한계로 인해 그다지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하위 문화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런 하위 문화들의 존재 이유는 그 문화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새로움을 추동하기 위함이다. 버클 또한 에듀테크라는 다소 기계적이고 사막화된 공간에 변화와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해 탄생된 공간이다. 시작은 여느 블로그와 다름이 없지만 언젠가는 미미하게나마 에듀테크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하위문화로써 버클의 영향력이 한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매체 자체의 영향력으로서도 그렇지만 매체 형식의 다양성면에서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컬럼이나 뉴스들을 번역하고 전달하려고 했던 애초의 시도는 양적인 면에서 여전히 부족하며 형식적인 면에서도 텍스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팟캐스트 등의 시도를 논의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그 시도를 해보지 못하고 있고 네이버나 카카오스토리나 다양한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좀 더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은 버클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능성에 가깝다. 이런 가능성은 좀 더 과감한 시도와 좀 더 다양한 면모를 갖춘 사람들의 참여로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 새로운 멤버로 영입된 알솜의 참여는 우리 멤버들에게는 꽤 신선한 사건이 된 듯하다. 참여 연령의 평균을 낮췄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소 기술쪽에 경도되어 있던 글들이 기술 외적인 부분으로 외연확장이 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영어나 중국어로 된 컬럼과 영상과 인포그래픽, 카툰 등의 다양한 미디어가 버클에 등장하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멤버들과 형식의 다양성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변화보다 좀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스스로의 변화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사람과 매체의 영입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는 아직은 알수 없다. 다만 교육이라는 주제가 가지고 있는 무게와 범위가 하나의 언어와 형식으로만 이야기되기에는 너무 큰 주제라는 안타까움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이유다.

버클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