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Adaptive Learning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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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권이 들어선 후 가장 극적인 변화는 남북관계로 인한 분위기 반전이지만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못지 않은 극적인  변화들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비하면 교육부분에 대한 변화의 흐름은 답답할 정도로 속도가 느린데다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조차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한 상황이다.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는 기득권과 비기득권간에 피아식별이 비교적 명확한데 비해 교육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데 근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무상급식과 같은 이슈 외에는 교육관련된 이슈중 진보와 보수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없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교육 정책이라도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힘든 이유는 그래서다. 결국은 진보 보수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인데 그 선택은 진보 진영의 지지층의 분열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국정과제에 있어 가장 후순위로 밀려 있다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교육은 어느 사회든 생존권과도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무작정 미루고만 있을 수 없는 시급한 사회적 현안이다. 차일피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아이들은 입시전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학부모는 아이들의 학원비를 대느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대로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진 진로지도와 학업지도때문에 몸살을 겪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의 출발이 문제 해결에 대한 방법론에서 문제를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되돌아와야 할 이유는 그래서다. 교육 문제를 현재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처방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정권 차원에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영구미결 과제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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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넷플릭스의 ‘노바 : 미래의 교육(School of the future)’의 내용은 인접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두 마을(Palo Alto, East Palo Alto)의 교육환경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자라는 환경이 교육에 어떤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고속도로가 가르고 있는 두 지역 간의 학부모의 소득격차는 우리나라의 강남과 그외 지역을 가르고 있는 빈부차이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이 환경적 차이로 인해 자녀들의 학습 능력도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와 해결책이 이 다큐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이다.

‘신경가소성’, ‘GRIT’ 등 인지학습이론서 익히 다뤄져왔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다큐가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교육평등권의 실현의 차원에서 AL(적응형 학습, Adaptive Learning)을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AL을 단순히 학습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다큐에 따르면 미래 교실은 VR, AR과 같은 거창한 가상 기술로 둘러쌓인 공간이라기 보다는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가정환경과 관계없이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공평하게 마칠 수 있도록 교육평등권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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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은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고 각자의 학습 수준과 학습방법에 대한 취향을 고려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준의 학생들을 고려하여 학습을 사전에 설계하고 다수의 학습자가 개별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실현하는데 있어 많은 난제가 있다. 비용, 효율성, 플랫폼, 콘텐츠의 세분화 등 하나 하나가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비용대비 효과라는 측면의 경제논리로만 AL을 바라볼 경우 판단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다. AL이 한때 이러닝 업계에서 한동안 화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오프라인 교육방식의 비용적 한계를 기술로 해결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고 최근들어 다시 AL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Machine Learning, Deep Learning과 같은 AI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AL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AL이 금방 공교육에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른 과제들에 비해 AL이 그다지 절실한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절실하지 않은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사회가 AL과 평등교육이라는 가치와 연결시켜 이해를 한 경험이 없어서이다.

뜬금없지만 우리 헌법 31조를 한번 보자.

헌법 제31조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④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⑥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1항에 있는 균등교육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는 있겠지만 균등교육이 의무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로만 해석되어왔던 것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이유는 빈부 차이에 의한 교육 환경의 격차가 이미 사회 양극화의 근본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이 더이상 균등교육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AL을 지금 이 시기에 다시 이야기해야하는 이유는 머신러닝이나 딥러닝과 같은 새로운 기술때문이 아니라 이제서야 균등교육을 논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정치 이야기를 화두로 꺼낸 이유도 그래서이다.

AL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더불어 AL에 대한 비판적 회의론은 AL의 근본 가치를 외면한 채 기술적 효용성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입장 모두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AL은 벤자민 블룸의 완전학습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이기 이전에 교육평등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교육과 관련된 이해당사자들간의 이익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가 아니라 균등교육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로 시작되어야 한다. 어려워서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해야하는 것으로 AL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PISA에서 미국의 상위 10%의 학생들은 다른 국가의 상위 10%에 비해서 훨씬 우수하지만 현재 미국식 엘리트 교육체계가 타국들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상위 학생들과 하위 학생들과의 심각한 격차때문이다. 미국교육에서 AL을 미래교육의 핵심 과제로 선정하고 있는 근본 이유다.

우리도 기술이 아닌 가치로 AL을 다시 바라봐야할 시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