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와 아빠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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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는 위계가 있다. 위계는 언듯보면 상하관계로 보인다. 사장 아래 이사, 이사 아래 부장, 부장 아래 등등등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권한과 책임이 위계 속에 녹아있다.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조직도라고 하는 것이 있다. 위계를 잘 표현하는 도식화이다. 장 아래에 본부, 본부 아래 부서, 부서 아래 담당자들이 폭포수처럼 배치되어 있다.

가정을 생각해 보자. 가정 속에는 위계가 있을까? 과거에는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 아래 어머니, 어머니 아래 장남/장녀, 장남/장녀 아래에 둘째 이하 등등등. 과연 지금도 가정의 위계는 유효할까? 위계가 엄격한 가정이 지금도 있겠지. 그런 가정을 ‘잘 돌아가는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을까? 세상이 바뀌고 있고, 아니 이미 바뀌었고 위계의 존재도 바뀌고 있다 믿고 있다.

잘 되는 가정은 어떠할까? 가족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면 전문가들은 친구같은 아빠(아버지 말고)를 둔 아들이 사회성도 좋고 제 역할도 잘 찾는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가정 속의 아버지의 위상이 아빠로 재정립되고 있는 것 아닐까. 다정다감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그런 아빠,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같이 조근조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남편, 지금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가정 내의 아빠상이다. 아빠다움, 예전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와보자. 조직에는 위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정한다. 책임과 권한이 명확해야 조직이 잘 돌아간다고, 누군가는 일사분란하게 조정하고 관리해야 직원들이 딴 생각을 안한다고.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그 조직은 지금도 잘 돌아가고, 앞으로도 잘 돌아간다는 보장이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곪고 있을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조직으로 ‘월급 나오니까 뭐’의 생각이 만연해지고, 기회만 보면서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서랍 속에서 사직서를 넣었다 뺐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하는 조직에 아빠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과거에 이런 실험을 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모두 끌어안고 있다가 자폭했다. 가정에서는 아빠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하고, 너그럽게 했지만 조직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가정에서 힘을 다 빼고 조직에서는 무미건조하게 책임과 권한만 이양하고 방치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본다.

아빠가 힘들다, 아빠가 이래서 고민이다, 도와줘라, 함께 고민해 보자 등의 대화를 통해 아빠다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민이다. 조직에서의 아빠다움을 어떻게 구현하면 위계를 초월한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아빠다움과 같은 형태를 조직에 구현하는 것은 정녕 황당한 생각일뿐인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조직은 굳이 아빠다움을 추구할 필요 없다. 그렇지만 위계를 강조하는 문화를 탈피하고 약간은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이게 아빠다움만한 프레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혼자 권한을 휘두를 필요도 없고, 혼자 책임질 필요도 없고, 적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권력의 분산을 위해 아빠다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어라 불러볼까, 조직에서의 아빠다움을.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해서 이 고민을 하게될 것 같다. 어느 정도 실마리가 보일 때까지. 중요한 것은 변화의 시작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먼저 내려놓고 시작하자.